17년간 런던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온 타리크 라만이 방글라데시 차기 총리로 오를 전망이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8일(현지시간) 치러진 방글라데시 총선에서 라만의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BNP 역시 승리를 선언했다. 인구 1억7000만명 이상의 남아시아 국가에서 중요한 정치적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60세인 라만에게 이번 정권 교체는 극적인 반전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혼란에 빠진 방글라데시로 귀국했다. 귀국 며칠 만에 그의 어머니이자 전직 총리인 칼레다 지아가 오랜 투병 끝에 사망했다. 이번 선거에서 라만은 2024년 학생 주도 봉기로 지아의 오랜 정적인 셰이크 하시나 전직 총리를 축출한 뒤 기세를 얻은 종교 보수당과 맞붙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도전은 이제부터일 수 있다.
2024년 봉기부터 이번 총선까지 방글라데시는 격동의 시기를 겪었다. 학생 지도자 사망 이후 불안이 계속됐고, 이슬람 단체의 부활, 법치 붕괴, 힌두 소수자 및 언론에 대한 공격, 경제 침체 등이 잇따랐다.
미국 애틀랜틱카운슬의 마이클 쿠겔만 남아시아 선임연구원은 "라만은 부패 척결과 국가 통합을 약속하는 등 모든 올바른 말을 했다"며 "하지만 BNP가 마지막으로 집권했을 때 탄압과 부패가 있었다는 나쁜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라만은 지아 정치 왕조의 핵심 인물이다.
그의 어머니는 총리로 두 차례 5년 임기를 수행했으며, 마지막 임기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였다. 그의 아버지 지아우르 라만은 육군에서 출발해 방글라데시 6대 대통령이 됐으나 1981년 암살됐다. 라만은 해군 참모총장의 딸인 의사 주바이다 라만과 결혼했다.
BNP는 하시나의 아와미연맹과 함께 수십 년간 방글라데시 정치 지형을 지배해온 양대 정치 세력 중 하나다. 최근 몇 년간 BNP는 광범위한 부정선거를 이유로 2024년 선거를 포함한 여러 선거를 보이콧했다.
라만의 정치 경력은 논란으로 점철됐다.
하시나 정부에서 여러 형사 사건의 표적이 된 그는 17년간 런던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2018년 그는 최소 24명이 사망한 2004년 하시나 저격 수류탄 공격과 관련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하시나는 이 공격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라만은 자신이 공격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부인했으며, BNP와 함께 판결이 정치적 동기에서 나왔다고 비난했다.
라만은 2008년 공식적으로는 치료 목적으로 방글라데시를 떠났다. 이는 지아가 평화적으로 새 선거를 치르고 권력을 이양하는 데 실패한 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통치한 군부 지원 행정부의 구금 기간 동안 고문을 받은 직후였다.
어머니 정부에서 공식 직책을 맡지는 않았지만, 라만은 BNP 내에서 권한대행 의장, 수석 부의장, 수석 공동 비서로 활동하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유출된 미국 외교 전문은 그를 "엄청나게 부패했다"고 묘사했다.
하시나 정부 붕괴 이후 라만에 대한 혐의와 유죄 판결이 취소되면서 그의 귀국길이 열렸다.
선거를 앞두고 그는 일자리 창출, 빈곤 가정에 대한 재정 지원, 언론의 자유 확대, 법 집행 강화, 부패 척결 등을 약속하며 이미지 쇄신을 시도했다. 그의 캠페인은 오랫동안 기득권 정당, 군부 개입, 선거 부정 의혹으로 얼룩진 국가에서 민주주의 수호자로 자신을 내세웠다.
하시나 축출 후 무함마드 유누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임시정부 수반은 런던에서 라만과 회동했으며, 이 만남이 그의 귀국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부상은 방글라데시 내 많은 이들, 특히 왕조 정치와 국가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구정치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를 원했던 봉기 참여자들을 자극할 것으로 예상된다.
쿠겔만 연구원은 라만의 핵심 시험대는 과거 BNP를 탄압했던 하시나의 아와미연맹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와미연맹은 과거 BNP 고위 지도부와 당원을 체포하는 등 탄압했으며, 라만의 어머니도 하시나 정부에서 체포돼 수감됐다.
하시나는 2024년 8월 이후 인도에서 망명 중이며, 다카의 특별재판소는 지난해 그녀를 축출한 봉기 당시 시위대 진압으로 발생한 반인도범죄 혐의로 사형을 선고했다. 하시나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한편 그녀의 당은 선거 참여가 금지됐으며, 수천 명의 당원이 박해 우려로 은신 중이다.
쿠겔만은 "라만이 보복에 기댄다면 낡은 정치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하지만 통합에 초점을 맞춘다면 고무적인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