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가지에 달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유발 유전자가 서로 달라도, 뇌 발달 초기에는 동일한 경로를 공유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가이아 노바리노 교수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과학기술연구소(ISTA) 연구팀은 다양한 자폐증 유발 유전자가 뇌 발달 초기 단계에서 공통된 분자·세포 경로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규명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17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자폐증은 유전적으로 복잡한 신경 발달 장애로, 수백 개의 관련 유전자가 보고됐지만 발병 기전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처럼 다양한 유전적 원인이 뇌에서 궁극적으로 동일한 생물학적 변화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연구팀은 '단일 핵 다중 오믹스 시퀀싱'이라는 최신 기술을 활용했다. 이 기술은 개별 세포핵 수준에서 유전 정보(DNA), 유전자 활성(RNA), 유전자 발현 조절(후성유전체) 등 여러 층위의 정보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통해 자폐증 고위험 유전자를 가진 쥐 모델을 대상으로, 다양한 발달 단계와 뇌 영역에 걸쳐 250개 이상의 샘플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유전자 변이의 종류는 달랐지만 뇌 발달 초기 단계의 특정 뇌세포 유형과 분자 과정은 여러 모델에서 공통으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영구적인 결함이 아닌, 세포 성숙과 연결성이 일시적으로 지연되는 형태로 나타났다.

특히 생후 약 2주가 지나면서 이러한 차이점 중 상당수가 사라지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암컷 쥐는 자폐증 관련 돌연변이에 대해 수컷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연구는 자폐증에 대한 '만능 치료제' 개발의 어려움을 시사하는 동시에, 공통된 발달 경로를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치료 전략의 가능성을 열었다.

노바리노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발달 단계, 생물학적 성별, 개인의 유전적·분자적 특성을 모두 고려한 맞춤형 치료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이는 인간의 뇌 발달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자폐 아동과 그 가족을 실질적으로 도울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