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이 전 지구적 생물 멸종 위기에 맞서는 새로운 구원투수로 떠올랐다.

영국 왕립식물원 큐(RBG Kew)는 16일(현지시간) 전 세계 40개국 400명 이상의 과학자가 참여한 '2026 세계 식물과 균류 현황'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는 AI와 데이터 기술 발전이 자연을 구하기 위한 경쟁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과학자들은 수백만 개의 식물 및 균류 표본을 디지털화하고 AI를 활용해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존에 잘못 식별된 종을 바로잡고, 숨겨진 생물다양성을 발견하는 등 보존 노력을 혁신하고 있다.

실제로 코스타리카 연구진은 디지털화된 기록을 통해 자국 내 균류 다양성을 약 20% 늘렸으며, AI는 육안으로 구별하기 힘든 식물의 미세한 특징을 학습해 종을 더 빨리 식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추적하는 데도 활용된다. 800만개의 디지털화된 표본을 AI로 분석한 결과, 지난 한 세기 동안 식물의 개화 시기가 10년마다 평균 2.5일씩 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식물과 수분 매개체 간의 관계를 교란해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고서는 기술 발전이 희망을 주고 있지만, 생물 멸종의 실제 규모는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까지 과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식물 종은 10만종 이상, 균류는 200만종 이상으로 추정되며 이들 대부분이 이름 붙여지기도 전에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다.

현재 공식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은 2만9748종, 균류는 411종에 달한다. 하지만 이는 전체 알려진 종 중 각각 18%, 0.6%만 평가된 결과로, 실제 위기 규모는 이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180년 된 표본에서도 고품질 유전체(게놈)를 추출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오래된 표본들이 신약 개발이나 질병 발생 예측을 위한 '유전체 금광'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보고서는 생물다양성 데이터의 공평한 공유와 활용을 강조했다. 데이터 격차를 해소하고 기술적 혜택이 전 세계적으로 공평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기술 기업과 환경 단체, 각국 정부의 협력과 투자가 시급하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