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떨어진 곳에 사는 종의 진화가 이동하는 포식자를 통해 연결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연구팀은 15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이동하는 포식자가 '진화의 메신저' 역할을 해 지리적으로 격리된 종들의 운명을 연결할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종이 공진화(co-evolution)하려면 같은 장소에 서식해야 한다는 기존 진화생물학의 오랜 가정을 뒤집는 것이다.

연구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포식자의 이동이 어떻게 멀리 떨어진 종의 진화를 연결하는지 모델링했다. 가령 태국에 사는 독사와 필리핀에 사는 독사는 서로 만날 일이 없지만, 두 지역을 오가는 철새와 같은 포식자가 진화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포식자가 한 지역에서 특정 무늬를 가진 독사를 피하도록 학습하면, 수천㎞를 이동한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무늬를 가진 종을 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두 종은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비슷한 경고 신호(색, 무늬 등)를 갖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 종이 동일한 경고 신호를 공유해 포식자로부터 함께 이익을 얻는 '뮐러 의태' 현상이 지리적 경계를 넘어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우리 연구 결과는 종들이 공진화하기 위해 반드시 지리적으로 공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동하는 개체들이 먼 생태계를 효과적으로 연결해 광범위한 지리적 규모에서 진화적 상호작용이 일어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원리가 독사와 이를 포식하는 맹금류뿐만 아니라, 식물과 초식동물의 군비 경쟁, 이동하는 숙주에 의해 퍼지는 바이러스 등 다양한 생태계 상호작용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