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를 공격하는 바이러스인 '파지'가 인체 세포에 달라붙어 내부로 침투하는 데 사용하는 '분자 닻'이 발견됐다.
헝가리 HUN-REN 생물학연구센터 발린트 킨체스 박사 연구팀은 장내 파지가 특정 표면 단백질을 이용해 인체 세포에 부착하는 능력을 갖췄다는 연구 결과를 1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 단백질을 '분자 닻'으로 명명하고, 유전 공학 기술을 이용해 이 부착 단백질을 원래 능력이 없던 다른 파지의 표면에 이식했다. 그 결과 조작된 파지는 인체 세포에 더 효율적으로 결합하고 높은 비율로 세포 안으로 들어갔다.
실험 쥐의 위장관에 투입했을 때도 조작된 파지는 장기간 머물렀지만, 일반 파지는 빠르게 제거됐다. 이는 파지의 세포 부착 능력이 단순한 부수 효과가 아닌, 생존을 위한 진화적 전략임을 보여준다.
가보르 아피요크 공동 제1저자 겸 교신저자는 "파지는 인체 바이러스가 아니어서 사람 세포에서 복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 특이한 능력은 향후 더 정밀한 파지 기반 치료법을 설계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현미경 분석을 통해 파지가 세포 안으로 들어간 뒤 파괴적인 경로가 아닌 골지체, 소포체 등 특정 세포 소기관으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파지가 세포 내부에서 온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발견은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장 속 파지가 박테리아뿐만 아니라 장 상피세포 표면과도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또한 이런 부착 관련 유전자를 가진 파지가 드물지 않으며, 건강한 사람의 장내 바이러스 환경에서 더 풍부하게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이는 해당 파지들이 안정적인 점막 환경에 더 잘 적응했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어떤 단백질이 인체 조직과의 결합을 조절하는지 이해하면, 특정 부위를 정밀하게 표적하고 약효를 오래 유지하는 차세대 파지 치료제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