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년 전 멸종한 고대 인류 '데니소바인'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가 현생 인류의 면역 체계를 지금도 강화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예일대 연구팀은 11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오세아니아 지역 주민들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파푸아뉴기니, 솔로몬 제도 등 오세아니아 근방 12개 집단의 주민 177명에게서 유전체(게놈)를 채취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 오세아니아인들의 조상은 최소 3개의 다른 데니소바인 그룹과 교류하며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유전자는 단순히 과거의 흔적으로 남은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인류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며 생물학적 기능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다.

특히 연구팀은 데니소바인에게서 받은 특정 유전 변이들이 인체의 면역 체계에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 병원균을 방어하는 데 핵심적인 '인터페론-감마 신호 전달 경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고대 인류가 새로운 환경의 병원균에 적응하는 데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도움을 줬다는 증거다.

연구를 이끈 세레나 투치 예일대 인류학과 조교수는 "데니소바인에게서 물려받은 DNA가 단순히 고대 인류 간 교류의 흔적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생물학에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첨단 기능 유전체 기술을 이용해 유전자 발현을 바꾸는 유전 변이 3100개 이상을 특정했다. 이 변이들은 인류가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밖에도 데니소바인의 DNA는 뼈 발달에 관여하는 'TRPS1' 유전자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유전자는 중앙아프리카나 에콰도르 고산지대 주민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특징으로, 서로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났음을 시사한다.

투치 교수는 "데니소바인은 수만 년 전 지구에서 사라졌지만, 이번 연구는 우리의 역사가 그들과 깊이 얽혀 있음을 증명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