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深海)가 생명공학 기술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미개척 '진화의 엔진'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UEA)와 중국과학원 해양연구소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은 전 세계 심해 환경에서 채취한 샘플 2100여개를 분석한 결과를 10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셀 호스트 앤 마이크로브'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번 분석을 통해 5억개 이상의 고유 유전자와 240만개의 단백질 구조로 구성된 방대한 유전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해양 유전자 다양성을 50% 이상 확장한 규모다.

연구 결과, 심해 생명체의 유전 정보는 매우 다양하게 변이하는 반면, 이들이 만들어내는 단백질의 핵심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역설이 발견됐다. 이는 극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유전적으로는 끊임없이 진화하면서도, 안정적인 핵심 설계는 유지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공동 교신저자인 토마스 모크 이스트앵글리아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심해가 단순한 생물 다양성의 저장소가 아니라, 독특한 유전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형성하고 다양화하는 '진화의 엔진'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특히 DNA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인 '헬리케이스'의 독특한 변이를 발견했다. 이 심해 버전 헬리케이스는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나노포어 시퀀싱' 기술의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제1저자인 양궈 중국과학원 박사는 "극한 환경의 생명체를 연구하는 것이 어떻게 새로운 도구와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인공지능(AI) 기반 단백질 구조 예측 도구와 최신 심해 샘플링 기술의 결합으로 가능했다고 밝혔다. 이어 "심해의 '유전체 암흑물질'을 탐사하는 장벽을 낮춰 생명공학 혁신을 가속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