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최초의 동물이 출현한 뒤 수억 년간 진화가 거의 멈춰 있었던 이유가 성관계 없는 번식, 즉 '무성생식'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은 10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태 및 진화'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고생물학계의 오랜 수수께끼였던 '에디아카라기'(6억3500만~5억3900만년 전) 동물군의 장기 정체 현상을 설명하는 단서다.
연구팀은 약 5억7400만년 전 화석인 '프락토푸수스'(Fractofusus) 등 초기 동물에 주목했다. 이 생물들은 입이나 장기, 운동 능력이 없어 현대 동물보다는 양치식물과 비슷한 형태를 띠었다. 이들은 주변 바닷물에서 직접 영양분을 흡수하며 생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동물들은 현대의 딸기처럼 포복줄기(러너)를 뻗어 자신과 유전적으로 동일한 복제 개체를 만드는 무성생식으로 번식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번식 방식이 진화적 혁신을 제한하는 핵심 요인이었다고 분석했다.
연구를 이끈 에밀리 미첼 박사는 "에디아카라기는 자원이 풍부하고 경쟁이 거의 없어 생물이 굳이 성(sex)을 통해 적응하거나 다양해질 필요가 적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세계 최대 에디아카라기 화석 유적인 '미스테이큰 포인트'의 화석들을 레이저 스캐닝, 인공지능(AI), 컴퓨터 모델링으로 분석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무성생식은 자손이 퍼져나갈 수 있는 거리를 제한했다. 이로 인해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들이 모여 사는 고립된 군집이 형성됐고, 종의 다양성은 낮아지고 자원 경쟁은 약하게 유지됐다.
하지만 점차 생명체가 얕은 바다로 서식지를 넓히면서 환경이 변했다. 폭풍, 조수, 수온 변화, 영양분 변동 등 새로운 환경 스트레스가 경쟁을 심화시켰다.
연구팀은 이런 가혹한 조건이 유전적 다양성을 높여 환경 적응에 유리한 '유성생식'의 등장을 촉진했다고 봤다. 유성생식으로의 전환이 에디아카라기 후기 2차 생물 다양성 폭발을 일으켰고, 약 5억4000만년 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