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표준 조건에서는 효과가 없던 신약 후보물질이 인체와 유사한 환경에서 시험하자 약효가 나타나는 등 약물 작용의 숨겨진 규칙이 발견됐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팀은 9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구조 및 분자생물학'에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체온과 세포 내 칼슘 농도 등 인체의 두 가지 기본적 특징이 약물이 표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바꿔 약효를 완전히 뒤집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초기 실험실 연구에서 유망했던 신약 후보물질이 후속 임상시험에서 실패하는 이유 중 일부를 설명하고, 부작용이 적은 신약 개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연구팀은 심장 박동, 면역 반응 등에 관여하는 단백질 채널 'TRPM4'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합성 분자인 'TPPO'는 표준 실험실 조건에서는 TRPM4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인체 온도(37°C)와 실제와 비슷한 칼슘 농도에서는 TRPM4 채널을 강력하게 활성화했다.

연구를 공동으로 이끈 후안 두 교수는 "단순히 올바른 조건에서 시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요한 신약 후보물질을 간과하고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반대의 경우도 확인됐다. TRPM4 활성제로 알려진 '네크로사이드-1'(NC1)은 낮은 칼슘 농도에서는 예상대로 작용했지만, 세포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처럼 칼슘 농도가 높아지자 약효를 대부분 잃었다.

연구팀은 극저온 전자현미경을 통해 TRPM4 단백질이 온도와 칼슘 농도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유연한 약물 결합 부위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구조적 변화가 약물과의 결합 여부와 그 결과를 결정했다.

이번 연구는 질병 상태에서만 활성화되는 치료법 개발 가능성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손상된 세포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칼슘 수치에만 반응하는 약물을 설계해 치료 정밀도를 높이고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은 TRPM4를 넘어 다른 많은 약물 표적에도 유사한 숨겨진 효과가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