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억달러(약 2조1000억원)가 넘는 정치자금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오는 11월 중간선거와 2028년 대선 판도를 좌우할 수 있는 막대한 규모다.

AP통신은 5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쌓아둔 정치자금이 역대 2기 대통령들을 압도하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직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2024년 선거일 이후 다양한 형태의 정치단체를 통해 15억달러를 초과하는 자금을 모금했다"고 밝혔다.

이 금액은 2024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에 사용된 총액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정치자금 추적기관 오픈시크릿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외부단체들은 2024년 선거에서 약 15억달러를 지출했다.

반면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재임 첫해 슈퍼팩과 민주당 전국위원회 등을 통해 약 9700만달러를 모금하는 데 그쳤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총액의 약 7%에 불과하다.

트럼프 측 인사들은 이 자금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비할 데 없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며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정치 의제가 좌초된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자신의 관세 정책에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에게 정치적 보복을 경고했다. 켄터키주 토머스 매시 하원의원을 주요 표적으로 삼았다. 매시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세금·지출 법안에 반대하고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연방 문건 공개를 도운 바 있다.

루이지애나주 빌 캐시디 상원의원도 표적이 됐다. 캐시디 의원은 2021년 의회 폭동 사건과 관련한 탄핵 재판에서 트럼프에게 유죄 표를 던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시디 의원의 경선 대항마를 지지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 선거에 실제로 얼마나 자금을 쏟아부을지는 미지수다. 미시간주의 공화당 전략가 제이슨 로는 "트럼프가 의회 의제를 위해 자신이 통제하는 돈을 활용하지 않는 점이 다소 놀랍다"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출마하지 않는 선거에 큰돈을 쓰지 않는 역사가 있다. 2018년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액션' 슈퍼팩은 3000만달러도 안 되는 금액을 지출했다. 당시 슈퍼팩들이 총 8억2000만달러를 썼던 것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협박을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2022년 알래스카주 리사 머카우스키 상원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해 알래스카를 방문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트럼프 계열 정치행동위원회(PAC)는 그녀를 반대하는 단체에 150만달러를 기부하는 데 그쳤다. 머카우스키 의원은 결국 재선에 성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자금은 2028년 대선에서도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JD 밴스 부통령과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며, 트럼프 대통령은 두 사람을 한 팀으로 묶는 방안을 시사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자금 대부분은 MAGA Inc. 슈퍼팩에서 나온다. 이 단체는 지난해 하반기에만 1억달러 이상을 모금했으며, 올해 초 3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지난해 1억7200만달러를 모금했다고 보고했다.

비영리단체인 '시큐어링 아메리칸 그레이트니스' 등 친트럼프 단체들도 있다. 이들은 제한된 재정 정보만 공개하면 되며, 한 단체에 들어온 기부금이 여러 비영리단체와 슈퍼팩을 오가며 사용처 추적을 어렵게 만든다.

브레넌센터 선거·정부 프로그램 국장이자 전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 변호사인 대니얼 와이너는 "슈퍼팩 자금 사용에는 사실상 제한이 없기 때문에 통제자의 뜻대로 쓰이는 비자금처럼 운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정치자금을 자신의 사업체를 살찌우는 데 사용한 전력이 있다. 자신의 비행기 사용료를 캠페인에 청구한 것이 대표적이다. 플로리다나 뉴저지의 자신의 부동산, 워싱턴 외곽의 골프장에서 정치 행사를 열 수도 있다.

2015년 이후 보수단체와 공화당 위원회들이 트럼프 부동산에서 최소 2600만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부 단체는 상세한 지출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 실제 금액은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캠페인리걸센터의 사우라브 고시 연방 선거자금 개혁국장은 "트럼프는 늘 그렇듯 때로는 허용된 범위의 한계를 시험하고, 때로는 명백한 법적 한계를 뚫고 지나간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모금 활동은 쉴 새가 없다. 2024년 대선 승리 다음 날 참모들에게 새로 모금을 시작하라고 지시했고, 이후 빈번한 모금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트럼프 측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기부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발송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한 메시지에서 "나는 여기 앉아 있다. 혼자. 전쟁실에서. 당신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썼다. 다른 메시지에서는 트럼프 계열 단체가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당신을 추적하러 와야 하나"라는 질문으로 기부를 독려했다.

첫 대선 출마 당시 소액 기부에 크게 의존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초부유층과 영향력 있는 기업들의 거액 수표에 의존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업 오픈AI의 공동창업자 그렉 브록먼과 그의 아내 애나는 지난해 MAGA Inc.에 2500만달러를 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기업의 AI 분야 글로벌 지배력 확보를 돕겠다고 거듭 언급한 시기와 맞물린다.

다른 거액 기부는 연방 수사가 중단된 암호화폐 업계와 규제 완화를 바라는 대형 담배 회사들로부터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핀란드 대사인 하워드 브로디의 부모는 MAGA Inc.에 50만달러를 기부했다. 이사벨라 헤레라는 350만달러를 기부했는데, 그녀의 아버지인 베네수엘라 은행가 훌리오 헤레라 벨루티니는 이후 뇌물 혐의로 트럼프 대통령의 사면을 받았다.

고시 국장은 "이들 부유층과 기업은 각자 목적을 갖고 돈을 내놓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에서 보이는 것은 전례 없는 수준의 대가성 정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