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주식 매매가 이뤄지지 않는 가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라도 투자자들이 실제 거래로 오인할 만한 외관을 갖췄다면 불법 금융투자상품시장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30일 자본시장법 위반,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본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이번 판결은 ‘리딩방’ 사기 등에 이용되는 허위 투자 사이트 개설·운영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명확한 법적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법원은 “통상의 주의력을 가진 평균적인 시장 참여자들이 증권 등의 매매가 실제로 이루어진다고 인식할 만한 외관을 갖춘 시장도 금융투자상품시장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매매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는데도 마치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외관을 갖춘 시장 개설 등을 통해 투자자를 기망하는 경우, 형사 제재의 당위성과 필요성은 더욱 크다”고 지적했다.
A씨는 범죄단체 조직원들과 공모해 2024년 4월부터 7월까지 가짜 투자 사이트를 개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텔레그램 리딩방을 통해 투자자들을 모집한 뒤, 나스닥 등 국내외 주가지수 데이터가 실시간 연동되는 가짜 HTS에 가입시켜 투자금 명목으로 62명에게서 총 84억여원을 가로챘다.
앞서 1심은 A씨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지만, 2심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해당 사이트는 피해자들을 속이기 위한 수단일 뿐 실제 증권 매매가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시장’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러한 2심 판단이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봤다. 대법원은 A씨 등이 만든 사이트가 국내 증권사 HTS를 모방해 매수·매도, 입출금 등 기능이 있고 실시간 데이터가 연동돼 투자자들이 실제 거래로 믿게 할 만한 외관을 충분히 갖췄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해 다시 심리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