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패션 브랜드 '아녜스 베(Agnès b.)' 창립자 아녜스 베가 자신의 삶과 예술 철학을 공개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아녜스 베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일상과 예술관을 소개했다.

아녜스 베는 "나는 패션을 하지 않는다. 옷을 만들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76년 첫 매장을 열었을 때 노동자 스타일의 옷을 판매했으며, 빠르게 성공을 거뒀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소니아 리키엘과 에마뉘엘 칸이 있었고, 언론은 내 부티크에서 뭔가 다른 것을 봤다"며 "언론이 나를 만들었다고 늘 말한다. 나는 광고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녜스 베는 지난 30년간 약 6천 점의 미술품을 수집해왔다. 앤디 워홀의 폴라로이드 사진과 알렉산더 칼더,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는 "1983년 바스키아의 자화상을 샀다. 당시 그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었다"며 "파리 전시회에서 만나 갤러리 맞은편 피자 가게에서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바스키아에 대해 그는 "그의 아버지가 그리스와 라틴어를 배우게 해서 매우 교양 있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고 덧붙였다.

아녜스 베는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즐긴다고 밝혔다. 그는 "런던에 갈 때마다 길버트 앤드 조지를 만나 저녁을 함께한다"며 "내 친구들은 모두 예술가다. 은행가 친구는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브랜드명 'Agnès b.'는 전 남편 크리스티앙 부르주아와 이혼한 후 탄생했다. 그는 "뉴스 기사에서 이름을 쓰는 방식처럼 'b점'만 붙이라고 했다"며 "로고는 내가 12살 때부터 써온 손글씨"라고 설명했다.

아녜스 베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신념도 드러냈다. 그는 "거리에서 먹을 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20유로를 주는 것이 최고의 쓰임새"라며 "부자들은 나눠야 한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변호사를 고용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수입의 65%를 국가에 낸다. 그래서 정부가 많은 훈장을 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녜스 베는 현재도 파리 뤼 디외에 있는 본사 6층 타원형 책상에서 매일 일한다. 그는 "여전히 모든 것을 디자인하고 그린다"며 "언젠가는 바뀌겠지만 지금은 그렇다"고 말했다.

영감에 대해 그는 "영감으로 고민한 적이 없다. 고객들이 내 디자인을 이해하고 좋아하니 아무것도 바꿀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

17명의 손주와 5명의 증손주를 둔 그는 "나는 결코 지루하지 않다"며 "16세기 프랑스 작가 미셸 드 몽테뉴는 '활동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고 말했는데, 그게 바로 나 같다"고 말했다.

아녜스 베는 현재 파리 장 미셸 바스키아 광장에 있는 자신의 갤러리 라 팹에서 오는 3월 22일까지 '인류(Humanité)' 전시를 준비 중이다. 워홀과 하모니 코린, 말릭 시디베 등 아프리카 작가들의 귀한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그는 "모든 것을 거는 것,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품들을 배치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큰 작업이지만 매우 즐긴다"고 밝혔다.

자신만의 스타일에 대해 아녜스 베는 "특별한 시그니처가 있다고 말하지 않겠지만, 사랑하는 반지 두 개를 자주 낀다"고 말했다. 하나는 손가락에 알루미늄을 구겨 만든 금반지이고, 다른 하나는 파리 몽마르트르 거리에서 주운 작은 다이아몬드 반지다.

그는 "배지 착용도 좋아한다. 베트남전 당시 '지금 평화를' 같은 오래된 배지들이 있다"며 "내가 무엇을 지지하는지 사람들에게 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화재 시 구할 물건으로 그는 18세기부터 가문에 전해 내려온 디드로와 달랑베르 백과사전을 꼽았다. 그는 "아름다운 판화가 들어 있는 거대하고 특별한 책"이라며 "어떤 옷보다 먼저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후 세계에 대한 질문에 아녜스 베는 "확신하지 못한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길 바란다"며 "영혼을 믿고, 영혼은 계속 산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다른 삶을 산다면 하고 싶은 일로 그는 농부를 택했다. 그는 "전쟁 말기 베르사유가 무서워서 어머니가 나를 노르망디 농장에 몇 달간 보냈는데 매우 행복했다"며 "돼지와 소, 닭, 토끼와 강이 있었다. 마법 같았다"고 회상했다.

아녜스 베가 받은 최고의 조언은 "자신답게 살라"는 것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아무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며 "하지만 그게 최고다. 남이 되려고 애쓰지 마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