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100만명 이상이 참여한 시민운동에 화답해 낙태를 원하는 여성에게 재정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AP통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26일(현지시간) '유럽 사회 기금 플러스(ESF+)'를 회원국 내 여성의 낙태 시술 비용 지원에 사용할 수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결정은 '내 목소리, 내 선택(My Voice, My Choice)'이라는 시민운동의 성공에 따른 것이다. 이 운동은 낙태가 어려운 국가의 여성이 안전한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EU 차원의 재정 지원을 요구하며 100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다.

운동을 이끈 니카 코바치(Nika Kovac)는 "새로운 법적 장치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우리 운동의 핵심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경로를 EU 집행위가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는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여성 인권에 대한 정치적 약속"이라며 "안전한 낙태 접근권이 공중 보건과 사회 정의의 문제임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디아 라비브(Hadja Lahbib) EU 평등 담당 집행위원은 "유럽에서 매년 거의 50만건의 안전하지 않은 낙태가 발생한다"며 "안전과 자유가 거주지나 소득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EU에는 '유럽시민발의(ECI)'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시작된 캠페인이 100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으면 EU 집행위는 이를 공식적으로 심의해야 한다.

'내 목소리, 내 선택' 캠페인이 100만명 이상의 서명을 확보하자 유럽의회는 지난해 12월 관련 자금 지원 안건을 찬성 358표, 반대 202표, 기권 79표로 가결한 바 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낙태가 합법이지만 폴란드·몰타 등 일부 국가는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결정으로 보수적인 국가의 여성들이 지원을 받을 길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일부 회원국에서는 반대 목소리도 나왔다. 몰타 출신 피터 아기우스 유럽의회 의원은 지난해 12월 토론에서 "몰타 국민이 결정한 사안을 어떻게 우리가 여기서 뒤집을 수 있겠는가"라며 EU의 결정이 각국의 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