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웨일스의 한 동굴에서 100년 넘게 자연적인 얼룩으로 여겨졌던 붉은 선들이 1만7100년 전 구석기 시대 인류가 남긴 영국 최고(最古)의 동굴 벽화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제 연구팀은 학술지 '쿼터너리'(Quaternary)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웨일스 남부 가워 반도의 '베이컨 홀' 동굴 속 붉은 선들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이 벽화는 1912년 옥스퍼드대 윌리엄 솔라스 교수와 프랑스 고고학자 앙리 브뢰일이 처음 발견해 구석기 예술로 발표했으나, 16년 뒤 자연 현상으로 재분류되며 학계에서 잊혔다.

당시 학계는 라스코나 알타미라 동굴벽화처럼 구체적인 동물 형상이 없는 추상적인 형태라는 이유로 인공물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조지 내시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최신 다중분광 영상 기술로 분석한 결과, 벽화는 자연적인 광물 흔적과 달랐다. 자연 침전물은 중력에 따라 수직으로 불규칙한 형태를 띠지만, 이 표식들은 일정한 간격의 평행한 수평선 11개로 이뤄져 있었다.

또한 안료의 미세한 분사 패턴은 물감 뱉기나 불기 기법으로 제작됐음을 시사했다. 지구화학 분석 결과, 안료는 동굴의 석회암 벽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점토 광물과 적철석 등을 혼합해 만든 인공 물감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벽화 위에 형성된 방해석을 우라늄-토륨 연대 측정법으로 분석해 벽화가 약 1만7100년 전에 제작됐다고 밝혔다. 이는 후기 구석기 시대로,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 벽화이자 북서유럽 최고 기록에 해당한다.

내시 박사는 "이번 발견은 100년 전 초기 발견자들의 안목이 옳았음을 증명한 것"이라며 "잊혔던 다른 유적지들을 현대 기술로 재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