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0마리로 시작한 외래종 도마뱀이 수십 년 만에 수백만 마리로 불어난 비결은 유전적 우수성이 아닌 폭발적인 번식력에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연구팀은 이 같은 내용의 유럽산 벽도마뱀의 북미 정착 성공 요인 분석 결과를 국제학술지 '분자 생태학'(Molecular Ecology) 최신호에 발표했다.

이 도마뱀은 1950년대 한 소년이 이탈리아 북부에서 휴가를 보낸 뒤 밀반입한 10마리가 시초다. 현재는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일대 공원과 주택가에 수십만에서 수백만 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팀은 소수의 개체로 시작된 집단에서 나타나는 '유전적 병목 현상'의 해답을 찾기 위해 이탈리아 현지 도마뱀과 신시내티 도마뱀의 유전체를 비교 분석했다.

소수 집단은 보통 근친교배로 인해 유전적 다양성이 감소하고 생존에 불리한 유전자가 발현될 위험이 커진다.

분석 결과 신시내티 도마뱀 집단에서도 유전적 다양성이 감소한 흔적이 발견됐다. 하지만 개체 수가 워낙 빠르게 늘어나면서 근친교배의 부작용이 생존에 영향을 미치기 전에 유전적 문제를 극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H. 라일 깁스 명예교수는 "유전적 병목 현상이 있었지만, 그 기간이 매우 짧아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폭발적인 개체 수 증가로 잠재적인 유전 문제를 해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시내티의 환경이 도마뱀의 확산에 유리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기후나 서식지 구조가 원래 살던 유럽과 유사했고, 마땅한 경쟁자나 포식자가 없었던 점이 빠른 번식을 도왔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신시내티 도마뱀에게서 신경 기능 및 학습·기억 관련 유전자의 변화가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 유전자는 인간에게서 납 독성 영향을 줄이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벽도마뱀은 혈중 납 농도가 매우 높음에도 중독 증상을 보이지 않는데, 연구팀은 이와 관련한 추가 연구를 진행 중이다.

깁스 교수는 "이 도마뱀들은 도시 환경에만 머무는 경향이 있다"며 "이번 연구는 특정 외래종의 성공 비결과 도시 환경이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