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성 펀드를 판매한 증권사라도 투자금을 신탁사에 넘겼다면 투자 원금 전액을 반환할 책임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A사가 펀드 판매사 B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와 피고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원심은 B사의 투자자 보호 의무 위반을 인정해 손해의 60%를 배상하라고 판결하면서도, 투자 원금 반환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A사는 2020년 B사의 권유로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던 펀드 2개에 총 150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해당 펀드는 실제로는 비상장사 사모사채에 투자됐고, 투자금은 부동산 개발 등 위험자산에 사용돼 손실이 발생했다.

이에 A사는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주장하며 투자 원금 150억원을 부당이득으로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다. 하지만 재판부는 B사의 원금 반환 책임은 없다고 판단했다. B사가 투자자 A사와의 계약에 따라 투자금을 신탁사인 R은행에 지급한 이상, B사에 이익이 '현존'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투자중개업자가 선의의 수익자로서 신탁업자에게 투자금을 지급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받은 금전상 이익이 현존한다는 추정은 번복된다"고 설명했다. 민법상 선의의 수익자는 받은 이익이 현존하는 한도에서만 반환 책임이 있다.

다만 재판부는 B사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했다. 대법원은 "피고(B사)는 펀드 구조나 위험성 등에 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투자자보호의무를 위반했다"는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이에 따라 B사가 A사에 입힌 손해의 60%를 배상해야 한다는 원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이번 판결은 펀드 판매사의 책임을 '부당이득 반환'과 '손해배상'으로 명확히 구분한 것이다. 투자금을 직접 운용하지 않고 중개 역할만 한 판매사에는 원금 반환 의무를 묻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한 판결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