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가 사고 피해자에게 지급한 '뭉칫돈 합의금'으로 건강보험공단의 구상금 지급을 회피하려는 관행에 대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B보험사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판결은 보험사가 지급한 합의금 중 구상금에서 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명확히 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사건은 2018년 11월 한 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에서 시작됐다. 이 사고로 피해자 6명이 상해를 입었고, 건보공단은 이들의 치료비로 발생한 요양급여비용 중 공단부담금 약 3900만원을 지급했다.

이후 건보공단은 고시원 운영자의 보험사인 B사를 상대로 공단부담금을 돌려달라며 구상금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B사는 이미 피해자들과 합의하고 총 5620만원의 합의금을 지급했다며, 이 금액이 공단의 구상금보다 크므로 지급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쟁점은 B사가 지급한 합의금 중 어느 범위까지 건보공단 구상금에서 공제할 수 있는지였다. 대법원은 건보 급여와 성격이 겹치지 않는 손해 항목, 즉 위자료, 비급여 치료비, 향후 치료비, 일실수입 등에 해당하는 금액만 공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B사가 피해자들에게 합의금을 지급하며 세부 항목을 특정하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이 경우, 피해자의 전체 손해액에서 위자료 등 건보 급여와 무관한 항목이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하고, 그 비율만큼만 보험사가 지급한 합의금에서 공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시했다.

원심은 이 같은 비례 공제 방식으로 건보공단의 구상권을 인정했으며,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B사의 상고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