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은 경기침체로 이어진다'는 경제계의 오랜 공식이 이번에는 깨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역사적으로 미국에서는 전후 11번의 경기침체 중 1960년을 제외한 10번이 유가 급등 이후에 발생했다.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이를 잡기 위한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결국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경기침체를 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으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미국 경제는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2%대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으며, 뉴욕 증시는 인공지능(AI) 열풍과 기업들의 실적 호조에 힘입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를 유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유가 수준을 '위험선'으로 제시했다. 무디스는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25달러를 지속해서 웃돌 경우 '완만한 경기침체'가 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BNP파리바는 배럴당 200달러를 명확한 침체 신호로 지목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브렌트유가 두 달간 평균 140달러를 기록하면 미국 GDP가 일시적으로 하락하는 등 세계 경제 일부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과거와 다른 양상이 나타나는 배경에는 달라진 미국 경제의 체력이 있다. 미국은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보다 석유 의존도가 크게 낮아졌고,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자급자족 능력이 향상됐다.
유리존 SLJ의 스티븐 젠은 현재 미국 경제가 유가 충격에 대해 유럽이나 아시아보다 약 절반 수준의 민감도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1970년대에는 유가가 50% 급등하면 GDP가 1.0% 감소했지만, 지금은 0.2% 감소에 그칠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AI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유가 급등으로 인한 고강도 긴축이 기술주 중심의 자산 시장 붕괴를 초래하고, 이것이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현재 기술 부문이 S&P 500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구글, 메타, 아마존 등 AI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한 빅테크 기업들이 고유가로 비용 압박을 받으면 시장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