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인공지능(AI)과 탄소중립 시대에 맞춰 가계 대출 중심에서 벗어나 에너지 등 생산적 분야로 자금의 물꼬를 돌리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6일 '제4차 금융업권 생산적 금융협의체'를 열고 향후 5년간 약 1242조원의 자금을 생산적 분야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1년간의 성과를 점검하는 자리에서 나온 발표로, 이미 올해 3월 말까지 92조원이 신속하게 공급됐다.
실제 자금 흐름도 바뀌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5대 금융지주와 산업·기업은행의 총자산에서 기업대출 및 투자 잔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6월 말 67.8%에서 올해 3월 말 68.6%로 0.8%포인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비중은 32.1%에서 31.4%로 줄었다. 9개월 새 기업과 투자 부문에 95조원의 자금이 순증한 결과다.
이 같은 금융권의 대전환은 에너지 산업의 구조적 변화 때문이다. 회의에 참석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 급증, 탄소중립, 에너지 안보를 에너지 산업 변화의 세 축으로 꼽았다. 특히 챗GPT의 건당 전력수요는 구글 검색의 9.7배에 달해, 미래 전력수요가 2030년까지 2배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에너지 산업은 전통적인 자원·채굴 산업에서 대규모 설비·인프라 투자가 필요한 '국가 전략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에너지 자립도는 22.1%(원전 제외 시 4.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5위 수준에 그쳐,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망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금융권은 장기·모험 자본 공급 역할을 맡는다. 산업은행은 5대 시중은행과 2030년까지 9조원 규모의 '미래에너지 펀드'를 조성하고, 기업은행은 5년간 8조원 규모의 에너지 분야 금융 공급 계획을 수립했다. KB, 하나 등 주요 금융지주사들도 해상풍력, 수소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실적 부풀리기라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금융권 스스로 생산적 금융 기준을 검증해야 한다"며 "'무늬만 생산적 금융'이 되지 않도록 매년 백서를 발간해 시장의 평가를 받는 체계를 구축하자"고 당부했다.

